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맡겨진 자리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십시오. 에스겔 19;1-14

  • 새생명
  • 2015-10-13
  • 936 회
  • 2 건

1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2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3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4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5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6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7    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그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 
8    이방이 포위하고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9    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그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10    네 피의 어머니는 물 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11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12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13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어진 바 되고 
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이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해 애가를 지으라 하십니다. 암사자가 낳은 새끼가 자라 사람을 삼키자, 이방이 그를 잡아 애굽으로 끌고 갑니다. 또 다른 새끼가 젊은 사자가 되어 사람을 삼키자 이방이 그를 바벨론 옥에 가두고,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는 뽑혀 불에 탑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리더들은 어떤상황이 와도 주님만을 의지하고, 다른사람들에게 자신을 낮추면서 겸손히 섬겨야한다. 

    • 아침해돋는빛 15-10-13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이스라엘 역사를 알면 도움이 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나라의 역사를 바르게 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요시야왕, 또 한번은 여호야김 왕때입니다.
      유다의 막지막때의 왕 순서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입니다. 그 중에 요시야와 여호야김 왕때에 회복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두 왕은 오랫동안 통치했고 민족개혁과 영적 부흥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실패하거나 예언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인간적인 계획이 패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기회가 있었지만 이 두 사람에게 공통된 실수가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역사를 계승하고자 하는 안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양육할 줄 몰랐습니다.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꿈이 사람에게 있음을 놓쳤습니다.
      이 요시야의 실수가 본문의 새끼 하나가 젊은 사자가 되었으나 사람을 삼켰다는 아들 여호아하스왕의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사자가 조금식 이견은 있지만 여호야김의 다음 왕인 여호야긴입니다. 이런 틀로 본문을 읽어갑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애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애가란 슬픔의 노래, 애도의 노래란 뜻입니다. 국가적인 위기를 맞아 백성들이 회개하거나 장례식에서 고인을 이별하면서 부르는 짧은 형식의 글입니다.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한 애가,  예레미야가 요시야 왕의 죽음을 노래한 애가, 바벨론에 대한 이사야의 애가, 예루살렘을 향한 예레미야의 애가, 그리고 본문의 에스겔의 애가 등 예언적 메지지를 포함하고 있는 애가도 있습니다.

      첫 번째 애가는 암 사자가 두 마리의 새끼 사자를 키웠는데, 애굽과 바벨론으로 각각 사로 잡혀간다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애가는 첫 번째 새끼 사자처럼 포도나무도 분노 중에 뽑히고, 땅에 던져지고, 그 열매가 동풍에 마르고, 가지들이 꺾이고, 불에 타버리고, 메마른 땅에 심겨진다는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암 사자’는 두 가지 의미로 봅니다. 좁은 의미로는 요시야의 아내 하무달과 여호야김의 아내 느후스다를 말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유다,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를 말합니다.
      첫 번째 새끼 사자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 왕을 말합니다. 그는 매우 포악하여 동족을 학대하고 더 나아가 살해까지 하였는데 그래서 포악한 새끼 사자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는 말은 애굽 왕 바로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임명하였는데, 그가 악하게 행하자 그를 사로잡아 애굽으로 끌고 갔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새끼 사자에 대해선 학자들의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즉,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라는 주장과 여호야긴 왕이라는 견해입니다. 둘 다 바벨론으로 끌려 간 왕들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야김은 애굽으로 끌려 간 여호아하스를 계승하여 왕이 되었으나 바벨론이 애굽에 재 침략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곧장 배반하였습니다. 그 이유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첫 번째 포로 신세가 되었는데 그 때 소년 다니엘도 그 일행에 있었습니다. 여호야긴은 여호야김의 아들로 왕으로 즉위한지 석 달 만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 간 왕입니다. 그 때 제사장 에스겔도 그 일행에 있었습니다. 통설은 두 번째 의견으로 봅니다. 본문에 ‘그를 옥에 가두어’라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감옥에서 무려 37년 간 갇혀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아하스는 열왕기하 23장 32절을 보면 악을 행한 왕으로 소개됩니다. 짧은 기간동안 사람을 삼키는 사자처럼 죄악을 행하다가 609년 애굽왕 느고에 의해 애굽땅으로 끌려갑니다. 열왕기하23장은 이 여호아하스의 모친 이름을 하무달이라고 언급합니다.
      똑똑한 왕, 강력한 왕이었고 아내도 똑똑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만했습니다. 개혁이 어느정도 성공하자 쉬 오만해졌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이 잘되어갈 때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순탄하게 되어질 때 우리를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손양육에 실패했습니다. 아들 여호아하스가 등장하다마다 범죄하여 3개월만에 왕권을 박탈당합니다.

      두 번째 사자로 소개되고 있는 여호야긴도 동일합니다. 열왕기하 24장은 여호야긴이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고 합니다.

      안타까운것은 10-14절은 두 마리의 사자 비유에 이어 물가에 심기운 포도나무 비유가 나옵니다. 물가에 심기운 포도나무이어서 건강했고 능력있는 지도자 나라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으나 결국은 땅에 던짐을 당하고 마르고 꺾이고 말라 불에 탔다고 합니다. 가능성이 꺾인 것입니다.
      훌융한 미래,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꺾이고 무너진 것은 부모와 한 세대의 책임입니다. 다음세대, 내일의 세대를 키우지 못한 결과입니다.
      • 소망의바다 15-10-13
        나는 얼마만큼 다음 세대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가?
        나의 아들과 딸이 이 땅에서 돈 많이 벌고 잘 살아가는 것,
        그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얼마나 바르게 행하는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같을 길을 걸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요시야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여호야김도 그랬다.
        당대에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그럼에도 내일을 준비하지 못했다.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지 못했다.
        황홀했던 문명, 다시 피어날 것 같았던 희망의 징조는 다 꺾여 버렸다.

        어쩌면 자녀를 키우고 있는 내가
         교회가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에 실패한다면
        다음세대를 위한 지도자를 양육하지 못한다면
         땀 흘려 헌신하고 장막터를 넓히고 선교의 지경을 넓혀도
        모든 것은 헛되고 말것이다.

        양육, 제자훈련의 중요성!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바르게 영적 지도자로 서야 하고
        양육할 수 있는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복음의 역사가 계속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책임있는 리더,
        책임있는 부모가 되는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교회에 말씀이 있고
        양육이 있는 것이 먼저 부모세대에게서 준비되고
        아이들에게까지 잘 흘려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하고 힘주고 밀어주며 더 많이 격려해야 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