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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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은 못하는 겁니다 - 겔3;1-15
- Peter
- 20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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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건
20150915 말씀큐티와 영성일기
에스겔3;1-15
엎드려서 듣고, 일어서서 말씀을 받고라는 말씀이
어제는 예배에 관한 큰 성찰과 깨달음을 얻게 했습니다.
전하기전에, 나누기 전에
내 안에 먼저 엎드림이 있어야 된다는 것.
먼저 엎드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받음이 있어야 됨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읽으니 겔3;1절 말씀이 더 살갑습니다.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먼저 네가 말씀을 취하고 그 다음에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 가슴에 더 와 닿습니다.
당연히 말씀을 취해야 전할 수 있음이 당연한 것인데
웬지, 설교를 위해서 말씀을 먹는 것이 아니라
먼저 네 영혼을 위해서 말씀을 먹어라.
그리고 먹어서 소화시키고 살아가는 만큼 전하라 그렇게도 다가옵니다.
그럴려니 참 부족함이 많다 싶은데 말씀이 참 좋습니다.
겔2;7절이 그래서 더 좋습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사람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된다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할 수 있는만큼 힘 다해 말씀이 그러한가 상고해보고 또 묵상해야 겠구나.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겔3;7)
말씀을 들은자는 사명을 받은 것이고
사명을 받았으면 그 자리로 가야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그리고 좋은 반응을 얻을 수도 없는 일을 하도록
에스겔이 받았습니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줄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이 이 일을 맡기신 것이구나.
에스겔을 나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별로 소득도 없는 일이라면,
아무리 열심히 목회를 하고 멧세지를 전하고
아무리 열심을 외쳐도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고
또 아무 좋은 반응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 때
나는 과연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일을 나에게 맡기셨는데,
내가 과연 순종할 수 있을까?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시려는걸까요?
왜, 나를 이곳에 보내셨을까를 생각해봅니다.
결과보다
에스겔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 아닐까?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가를 보기 원하신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하나님께서 순종하라고 말씀하셨기에 감당한다는 동기가 없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 더 생각합니다.
지금도 에스겔과 같이 명령을 받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슬람권, 중동지방과 곳곳에서 결신자를 얻는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 오늘도 많은 선교사님들이
사역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그들이, 아니 우리가 후원하는 선교사님들이
10년, 20년이 지나도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 보고를 받게되면 우리는 더 이상 후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결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비록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사실 때문에
다만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거기에서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오히려 더 위로받고
더 도움을 받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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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마N뉴마 15-09-16
- 처음 예수님을 영접했을때는 저절로 말씀이 읽어지며 그렇게 꿀송이처럼 달수가 없었는데....성경책을 손에서 떼질 않았는데 ....
2절 말씀에서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꿀 같더라' 이 절을 읽으며 다시금 말씀에 대한 첫사랑의 회복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케빈 15-09-16
-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말씀이 꿀 처럼 달게 느껴지는 것은 언제일까?
말씀이 내 생명이고, 하루를 살게하고, 그 길위에 걸어가게 되며
생각지도 못한때에 이른비와 늦은비처럼 적절히 내려주심을 어느날 깨닫게 될때
아, 이것 없으는 내가 못 사는 것이구나.
이것때문에 내가 여지껏 살아온것이구나.
어느날 깨달아지고 그것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알게될때 그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목사로 사역할때 어느 분이 그러셨습니다.
부목사님들이 설교를 할때 꿀처럼 달콤한데
담임목사님이 설교를 하면 물 같다 그러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가지 더 말씀하셨습니다.
가끔씩 들으면 꿀같이 달아서 좋은것 같은데 오래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물은 언제든지 오래도록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한번의 반짝이는 말씀보다
늘 한결같은 힘있는 말씀이 더 좋다는 말씀을 그렇게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 꿀 같더라는 말씀을 물 같더라는 말씀으로 받는게 좋다는 생각도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