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60126(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요한3서 1:9-10

  • 최고관리자
  • 2026-01-26
  • 121 회
  • 0 건

요한3서 1:9-10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장로의 신분으로 한 교회에 보낸 짧은 서신입니다. 수신자는 ‘가이오’라는 신실한 성도로, 그는 형제들을 잘 섬기고 진리를 따라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디오드레베’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교만하여 사도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자신을 높이고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참된 지도자의 인격은 권력이나 인정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행하는 삶’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서신은 외형적인 종교 활동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진실되고 겸손한 사람됨을 중요하게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가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이것으로 족하지 아니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들을 막아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디오드레베는 진리보다 자신의 위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9절)

그의 사람됨은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리더십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이 흔들리는 것을 진리가 역사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한 개인차원이 아니라 사도의 권위와 복음의 진리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디오드레베는 요한의 서신을 공동체에 전달하지 않았고, 권면을 의도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이는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라는 표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진리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 진리가 자신의 주도권을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진리의 내용보다, 그 진리가 가져올 권위의 이동을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입니다.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들을 막아 교회에서 내쫓는도다”(10절)

당시 교회는 나그네 선교사들과 형제들을 영접하는 것이 복음적 의무였습니다. 이는 개인 호의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형제들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영접하려는 성도들까지 막았고 결국 교회에서 내쫓는 행동까지 했습니다. 이 행동은 공동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체면 유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상처받고 분열되는데도 자기 결정이 흔들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공동체의 유익보다 자신의 체면을 우선한 사람입니다.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이것으로 족하지 아니하여”(10절)

여기서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내면 동기를 폭로합니다.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요한이 보낸 편지와 그들를 비방하며 여론을 조성했고 진리를 따르는 대신에 말로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기보다 보이는 자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행동은 늘 공개적이었고 통제적이었습니다. 그의 기준은 하나님의 시선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인격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드러납니다. 인격 즉 성품은 아무도 보지 않을때의 내가 어떤 사람인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칼로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맛있는 도넛을 먹기 전에 우리는 내 몸에 어떤 것이 유익한지 알고 있는것과 같습니다. 그때의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자제력이며, 더 깊이 들어가면 인격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디오드레베는 사람들이 볼 때는 지도자였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는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칭찬받을 때는 열심이지만 통제받지 않는 상황에서는 공동체를 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교회 밖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우리 안에서도 반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누군가가 볼 때는 신실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기준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직책이 있을 때는 열심히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쉽게 식어버리는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이는 자리에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을 가진 사람은 알아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합니다. 권한이 없어도 책임있게 행동하고 기준을 지킵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이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코람데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묵상 목표는 경건한 인격으로 살아가기입니다. 이것은 더 많은 일을 하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같은 일을 다른 기준으로 하겠다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의 말 한마디. 통제되지 않는 순간의 선택. 칭찬받지 않아도 계속하는 신실함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관심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입니다. 그분의 소망은 우리가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사람이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그리스도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